박관용 “문 대통령, 보수 세력과 대화하는 포용력 보여야”

혼돈의 시대다. 혹자는 난세(亂世)라 부른다. 갈피를 못 잡고,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, 우왕좌왕하는 시대다.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. 특별기획으...

[박관용 회고록] "탄핵 되풀이 않기를 그토록 염원했건만…"

2016년 11월, 대한민국에선 기상천외(奇想天外)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. “박근혜 대통령 하야(下野)하라” “대통령을 탄핵(彈劾)하라”는 외침이 전국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. ...

[박관용 회고록] 탄핵 역풍…오만과 내분으로 자멸한 여야

말 그대로 야당의 ‘3일 천하’였다. 국회는 ‘탄핵안은 국회본회의 보고 24시간에서 72시간 이내 무기명 투표’ 규정을 지켰고, 압도적 다수의 야당은 ‘잠시나마 한때’를 풍미(風靡...

[박관용 회고록] “탄핵 같은 일 또 있어선 안 되지만 같은 상황이면 ‘방망이’ 잡겠다”

“오늘 국회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정을 했습니다.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이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히 해소되지 못하고 끝내 탄핵소추라는 불행한 사태로 ...

[박관용 회고록] “대통령이 조금만 더 일찍 사과했더라면…”

“헌법 제65조 2항 단서에 의거, 대통령 노무현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.” 2004년 3월12일 오전 11시55분, 박관용 국회의장은 노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포했...

[박관용 회고록]“與 지도부는 ‘말리는 시늉’만…”

“좋다. 그렇다면 표결로 갈 수밖에.” 이틀 밤을 ‘절대 고독’ 속에 뜬눈으로 지새우고 난 11일 새벽, 표(票)로 결판내는 것 이외는 다른 도리가 없음을 확신했다고 박관용 당시 ...

[박관용 회고록] 박관용 “면담 회피는 ‘탄핵 유도’ 증거”

2004년 3월9일, 드디어 올 게 왔다. (새천년)민주당 의원 51명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 108명이 서명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식 발의됐다. 청와대와 열린우리당(...

[박관용 회고록] “파국 막기 위해 탄핵만은 피하려 했으나…”

‘탄핵’은 2004년을 연 화두(話頭)다. 철저한 원칙주의자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경고를 계기로 표면화된 탄핵은 사흘 뒤인 1월8일 기자회견을 통해 ‘공식화’됐다. 그는 “대통령이...

[박관용 회고록] ‘아집·독선 vs 소신·용기’ ‘마구잡이 vs 솔직·담백’

참여정부 시절, 아무래도 ‘반(反) 노무현’이 절대적이던 우리나라 골프장에는 금기(禁忌)가 있었다. ‘노무현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벌타(罰打)를 먹는 ‘한국형(型)’ 규칙이다...

[박관용 회고록] “우리당 승리 위해 적극 나서고 싶다”

2004년 ‘노무현 대통령 탄핵(彈劾·이하 탄핵)’ 주역으로는 당시 여당 (새천년)민주당에선 조순형 대표와 김경재·추미애 최고위원 등이 꼽힌다. 바로 그 추 위원이 친(親)노무현(...

[박관용 회고록] 대통령의 ‘먹튀’와 ‘의원 빼가기’로 극에 달한 새천년 배신감

“그의 성정(性情)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.” JP(김종필 전 총리)의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. 지도자에게 필요한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. JP는 그가 자신을...

[박관용 회고록] “이회창 1인 체제” 비난하며 탈당한 ‘박근혜 부총재’

“이제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.”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는 2002년 2월28일 기자회견을 자청, “이회창(昌) 총재의 ‘1인 지배체제’에 실망했다”며 탈당을 발표했다. ...

[박관용 회고록] 야당 출신 의장이 일궈낸 국회 활성화

박관용 제16대 국회의장(후반기· 2002년 7월~2004년 5월29일)은 여러모로 특별하다. 무엇보다 대통령이 ‘지명’하지 않은, 의원들이 선출한 의장이라는 점이다. 이전에 이승...

[박관용 회고록] ‘병풍’으로 주저앉은 이회창

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(昌) 후보의 패배는 ‘대선 참고서’로 살아 있다. ‘패할 수 없는 선거’ 그러나 ‘패할 수밖에 없던 선거’라는 역설을 지닌 채-. 현직 대...

[박관용 회고록] 승리 확신한 이인제, 총리·당 대표직 제의 등 막판 협상 거부

“이회창(昌)은 안 됩니다.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. 그러니….”“뭐야, 이 XX.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. 후보를 바꾸자고. 어디서 그 따위 얘기를. 누가 그런…....

[박관용 회고록] 대선 막판 ‘이인제 전도사’로 나선 YS

이회창(昌) 대표가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여권은 안정을 되찾는 ‘듯’했다. 50%를 상회하는 지지율이 이를 말해준다. 昌과 김대중(DJ), 김종필(JP) 3자 대결...

[박관용 회고록] YS 마음은 이인제에… ‘잘 따르고, 똑똑하고, 당찬’

‘이인제(IJ)가 없었다면’은 제15대 대선을 리뷰할 때 빠지지 않는 가정(假定)이다. IJ가 얻은 500만 표 때문이다.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(DJ) 후보가 신한국당 이회창(昌)...

[박관용 회고록] ‘젊은 후보론’으로 “昌은 아니다” 알린 YS

15대 총선이 있던 1996년의 김영삼(YS) 대통령 행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. 그의 총선 전략은 그런대로 주효했고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. 하지만 ‘돈과 ...

[박관용 회고록] ‘미워도 다시 한 번’…昌을 당 대표로

‘정치에 영원한 적도, 동지도 없다’처럼 정치의 비정(非情)을 적확하게 꼬집는 말은 없다. 권력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합치고, 또 언제라도 칼끝을 겨누는 게 정치판의 속성이다. 형...

[박관용 회고록] 공멸 부른 현재 권력과 ‘미래 후계자’ 갈등

김영삼(YS) 대통령의 이회창(昌) 총리 임명 의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. 정국은 안정을 찾았다. YS는 청와대 출입 K 기자의 “대단하십니다”는 덕담에 “내 뭐라캤나”하며 의기양...